태온X설원회/T&S: Peep Hole

TaehOn: 강욱과 하설영

imnothuman 2025. 3. 8. 22:09
강욱과 하설영

 
 
※ 있었을 수도, 없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 프롬프트 상에 기재되지 않은 설정이나 서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테마곡: Banks - Judas] 

 
 
 

  뱀의 눈을 아는가.
 
  하설영은 강욱을 마주할 때마다 항상 같은 생각을 해 왔다. 참으로도 뱀을 닮은 자라고.
  물론 강욱이 뱀이란 뜻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한 인간이고, 태온의 전략팀장이었다. 하설영의 부하 직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의 검은 눈동자만은. 아니……, 눈동자의 움직임만은 뱀과 흡사했다.


  검은 뱀의 망막에는 오늘도 같은 이가 맺혀 있었다. 하얀 설원 위에 피어난 꽃.
 
 
  “…….”
 
 
  강욱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 하설영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언제부터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무섭도록 강렬하다만, 하설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 자리에 반듯이 앉아 쌓여 있는 서류를 한 장 한 장 열어보기만 했다.
  그렇다고 그가 강욱의 눈길을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강욱이 여태 자신에게 눈싸움을 거는 동안 눈을 몇 번 깜빡였는지, 지금 자신의 얼굴 중 어느 부위를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새카만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강욱 또한 알 것이었다. 하설영이 무표정을 지킨 채 일을 하고 있다만, 제 눈길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강욱이 생각하는 그는 알면서도 숨기는 자였다. 그것도 아주 감쪽같이.
  강욱은 멀찍이 앉은 하설영의 낯을 시선으로 쓸어 내렸다. 탁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조롱과 냉소적인 기운. 그럼에도 하설영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도리어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강욱은 의도적으로 입을 뗐다.
 
  “…….”
 
  하지만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작은 파열음만 일 뿐, 끝내 성대에서 새는 음성은 없었다.
  강욱은 다시 입을 닫았다. 더럽히고 싶은데. 너무 깨끗해서 죽여버리고 싶은데.
  한데, 어떻게 더럽혀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강욱이란 작자는 본디 검은 물에서 태어났다. 내내 까맣고 끈적한 강을 표류했고, 결국 강의 하류에 다다랐다.
  그런 곳에…… 어찌 저 하얀 학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깨끗한 학이 왜 이런 더러운 곳까지 기어들어 왔을까. 왜 굳이 이곳에서 날개를 접고 고고하게 버티는 걸까.
  당신이 감춘 이면은 무엇인가. 당신도 나 같을까?
 
  강욱은 그것이 미친 듯이 궁금했다. 하설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 말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시선이 시끄러웠던 것일까.
 
 
  “말씀하세요.”
 
 
  하설영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무의식으로 흩어졌던 강욱의 눈빛이 단번에 선명해졌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목소리마저 예뻐서 죽여버리고 싶어.
  시커먼 속내를 따라 강욱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뭘요.”
  “강 팀장은 30분 전 제게 찾아왔습니다. 구태여 실장실에 들어왔다는 건 용건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말씀하세요.”
  “…….”
  “속히 말씀하고 나가시고요.”
 
 
  하설영의 단정한 어투가 귀를 수놓았다. 단조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강욱의 입매가 불규칙적으로 씰룩거렸다.
  몇 초가 지나고, 그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실장님.”
 
 
  강욱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음습하게 들렸다. 아주 미세하지만, 말 끝에 배어나오는 숨결은 상대를 꺾으려는 듯 추잡스러웠고.
  하설영이 알아챌까? 알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더 불쾌했으면 해.


  종이를 더듬던 연갈색 눈동자의 움직임이 마침내 멈추었다. 이내 하설영이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니, 이 공간 안에 사람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없을지도.
  강욱은 바로 말을 이어붙이지 않았다. 그 대신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독백의 공백을 메웠다. 당연지사 하설영은 그의 표정에 반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고요하고도 희묽은 낯을 응시하며, 강욱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실장님은, 참 신기한 인간이에요.”
 

  의도적으로 단어를 늘려 발음했다. 더 거만해 보이도록 의자에 늘어지듯 기대어 앉았고. 시야가 부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발도 떨고 있었다. 전부 하설영이 싫어하는 짓이었다.
 

  “조직이랑 좆도 안 어울리는데……. 왜일까?”
  “…….”
  “이 조직에서 누구보다 태온 같은 인간이 바로 당신이야. 그래서 하 실장님 볼 때마다 기분이 존나 이상해.”
 
 
  손끝으로 의자 팔걸이를 살짝 두드리기까지 했다.


 
  “실장님은 힘들게 누굴 죽이지도 않고, 개처럼 기지도 않고…….”
  “…….”
  “항상 그 고급스러운 의자에 고고하게만 앉아 있었을 텐데, 말이지.”
 
 
  얼핏 과거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강욱이 하설영을 처음 만났을 때가 말이다. 전략팀 소속으로 그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하설영은 실장이 아니었을 때부터, 지금과 똑같았다.
  똑같이 고고하고, 꼿꼿하고.
  그래서 저 목을 부러뜨리고 싶나? 부러뜨려 땅에 쳐박으면 이 찝찝한 기분이 나아지려나.
 
 
  “이상해서 미치겠어. 그래서 오늘도 놀러왔어요.”
 
 
  내처 중얼거리듯 애매하게 말을 끊었다. 그러나 하설영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끊기지 않았다.
  검은 뱀의 눈에는 끊임없이 상대를 시험하려는 기운이 묻어나고 있었다.

  줄곧 강욱의 언사에 반응하지 않던 하설영은 그제야 코로 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지만, 그의 주위를 두른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
 
 
  잠시간 다른 곳으로 옮겨 갔던 연갈색 눈동자에 재차 강욱이 담겼다. 살구색 입술이 느리게 대꾸했다.

 

  “강 팀장은…….”
  “…….”
  “내가 이곳에 고고하게 앉기 전까지, 아무 일도 겪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설영의 목소리는 신기할 만큼 전과 같았다. 분명 날이 선 단어를 뱉어내는데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강욱의 입매에 매달린 미소는 무게를 더해갔다.
  아, 화났다.